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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였다면 내 집을 가질 수 있었을까?
2020.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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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나의 소박한 꿈...
서울에 내 집 마련하는 거 힘들겠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힘들다고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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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갖는 게 언제부터 이렇게 어려웠던 거야
부동산 문제라면...
조선시대도 심각했다고 함...
뜻밖의 대답이다..
부동산 문제 오늘날 되서 생긴 거 아니야?
ㅋㅋㅋㅋㅋㅋㅋ
ㄴㄴ! 지금의 서울인 한양을
도읍으로 정한 조선시대에도
부동산 문제가 심각했었거든!
그때도 집값이 어마어마했나??
응! 1720년에서 1800년대
매매가격을 보면 약 20배 정도 올랐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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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집값 변동 그래프[중앙일보 유튜브]
지금의 한국 못지않네!
저렇게 집값이 오른 이유는 뭐였어?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증가하는 한양의 인구!
조선이 처음에 한양을 수도로 삼았을 때
한양의 면적은 약 500 결이었어
인구 약 10만 명 정도가 살기 적합한 크기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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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유튜브/서울역사박물관소장]
ㅇㅇ 그런데??
18세기에 들어서자
농업과 상공업이 발전하고
이때부터 서울 인구가 갈수록 늘었고
자연스럽게 집이 부족해져서
집값이 상승한 거지
ㅇㅎ..!
요즘은 집 없는 사람은 없고
있는 사람은 여러 채 있고 그러잖아
당시에는 어땠어??
당시에도 집 소유 격차는 컸어
부유층뿐만 아니라 고위공직자 그리고
왕족까지도 서울 집에 욕심을 냈다고 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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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의 기록에 의하면 성종이 '재상들이 서로 다투어 집을 짓기 때문에 정작 서민들은 도성 안에 집을 짓고 살기 어렵다'며 질책했다고 한다.[중앙일보 유튜브]
서울 도성 내에 그렇게 집이 부족해졌다면
생업을 위한 백성들은 어떻게 대처한 거야?
서울 곳곳에 임시로 집을 지어서 살곤 했대
근데 이마저도 궁궐의 풍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국왕이 이들을 강제로
도성 밖으로 이주시키려고도 했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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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국왕은 임시로 집을 짓고 사는 백성들을 수구문(광희문)밖으로 이주시키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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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하네!
ㅇㅇ 그래서 조정 신료들도 반대했어
수구문 밖은 치안이 좋지 않고
일용직 서민들은 통근 거리가 멀어지면
생업에 무리가 있을 것이라구
당연하지! 당시에는 지금처럼
교통이 편리했던 것도 아니잖아
맞아! 그래서 결국 서울 도성 밖에
'성저십리'라는 지역이 새롭게
서울 도성으로 포함되었대
지금의 마포, 부암동, 왕십리, 한남동 등이
여기에 포함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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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유튜브]
부동산 문제로 서울의 면적이 점점
넓어졌던 거네...!
그렇지!
문득 '굳이 서울에서 살 필요가 있나..'
싶어지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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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감이요....
어렵다고? 더 요약한다!
부동산 문제는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오래된 이야기로 약 100년간 조선시대의 집값이 16배 증가한 기간도 있음.
부유층, 공직자 그리고 왕족까지도 한양 도성내 집 마련에 욕심을 냈고, 갈 곳 없던 백성들은 임의로 집을 지어서 살거나 도성 밖으로 강제로 이주당하였음.
이에 서울 도성 밖에 성저십리라는 지역이 새롭게 서울 도성으로 포함되면서 서울의 면적이 점점 넓어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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