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보기1920년 4월 10일 자 동아일보에 게재된 나혜석&김우영의 결혼, 사진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이 얘기 하니까 1920년 세간의 화제였던
나혜석과 변호사 김우영의 결혼식이 생각난다!
맞지 그 둘은 당시 셀럽이었으니까ㅎㅎ
이 결혼식은 서울 정동 예배당에서 열렸잖아
모던보이와 모던걸의 결혼식은 이처럼
예배당에서 열리는 경우가 많았지!
가톨릭과 개신교 신자가 늘어나고,
서양식 문화가 퍼진 결과인가?
크게보기사진 PIXNIO, 중앙일보 기사 캡쳐
응응 신부가 면사포를 쓰고
신랑, 신부가 반지를 교환하는 문화가
이때 정착 되었지ㅎㅎ
정착되기 까지 시행착오도
꽤 많았을 것 같은데,
잘못 전해진 경우도 있었으려나?
응응 예를 들어
꽃을 뿌리는 풍습이 오색종이나
줄을 던지는 식으로 변형되기도 하고,
심한 경우 구두나 양말을
뿌리는 광경도 연출됐다고 하더라ㅇㅇ
흠 근데
서양식 결혼 문화의 도입이
결혼식 비용을 늘리는 요인이 됐겠어..!
맞아ㅜ 그래서 조선총독부 학무당국이
1933년 '의례의 준칙 제정에 관한 사항'을
발표하면서 이를 언급했어
크게보기사진 펭수
뭐라고 언급했는뎀??
"현하 조선에서 행해지는 다양한 혼상
등에 대한 의례에 걸쳐있는 사항이
극도로 많아서 무용의 시간을 버리고
막대한 비용을 투여하여 가계가 기울고
가산이 파산되는 폐해가 적지 않다"
라고 지적했던 기록이 있어!
오호.. 그럼 지금의 결혼식 틀이
완성된 계기는 뭐얌??
1969년 박정희 정부가 발표한
'가정의례준칙'을 통해서야!
결혼식 순서 구성을 명시하면서
지금의 결혼식 틀이 완성되었지ㅎㅎ
오호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1973년 1월 박정희 대통령이
"강제 규정을 만들어서라도
쓸데없는 낭비를 막도록 하라"
라고 지시했네!
크게보기사진 무한도전
응응 정부는 1973년 6월부터
약혼식 폐지, 답례품 및 피로연 금지,
화환이나 테이프 사용 금지 등을
'가정의례준칙'에 추가했어
위반하면 5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지만, 잘 지켜지지 않았다는 점..!
앞으로도 결혼식 문화
조금씩 바뀌어 가겠지??
크게보기사진 중앙일보 기사 캡쳐
응응 유튜버 한시연 씨는
자신의 결혼식을 유튜브 채널 통해
생중계 하기도 했잖아ㅎㅎ
오 나 그거 봤어!
코로나 때문에 결혼식 인원 제한이 있어서ㅜ
ㅇㅇ 맞아 온라인 결혼식에
참석한 구독자들은 자신의 친구나
가족이 결혼한 것처럼
축하 인사를 건네고
슈퍼챗을 통해 축의금을 전달했지!
나중에는 또 어떤 결혼식 문화가
자리 잡으려나 ㅋㅋㅋ 흥미롭당
크게보기사진 펭수
ㅇㅈㅇㅈ 궁금해ㅋㅋ
오늘도 좋은 정보 고마워 썰리 ❤
어렵다고? 더 요약한다!
1930년대 결혼식의 어색한 풍경, 즉 ‘서양+동양’이라는 두 문화의 혼합은 요즘 결혼식에서도 여전히 보인다. 본식은 웨딩드레스 등을 입고 서양식으로 치른 뒤, 한복으로 갈아입고 폐백실로 향한다.
조선 시대 사대부 문중의 혼례는 신붓집에서 치렀다. 처가에서 자녀를 낳고 키우다가 아이가 자라면 신랑 집으로 돌아가는 게 전통이었다. 잘 알려진 대로 율곡 이이도 외가인 강릉에서 자랐다. 그래서 결혼을 ‘장가(丈家·처가)간다’고 했다.
지금의 결혼식 틀이 완성된 건 1969년 3월 5일 박정희 정부가 발표한 ‘가정의례준칙’을 통해서다. 1973년 1월 박정희 대통령은 연두순시에서 “강제 규정을 만들어서라도 쓸데없는 낭비를 막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정부는 1973년 6월부터 약혼식 폐지, 답례품 및 피로연 금지, 화환이나 테이프 사용 금지 등을 ‘가정의례준칙’에 추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