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앞장서 정치권과 손발을 맞춘 사법농단 의혹이 제기된 지 1년. ‘사회의 마지막 보루’라는 사법부가 스스로 믿음을 저버렸기에 실망은 컸다. ‘정부기관 신뢰도 1위’였던 법원의 미래는 어디에?
재판도 흥정이 되나요?
양승태 대법원이 그 어려운 걸 해냈다. 대법원은 박근혜 정권에게 잘 보이기 위해 정부에 도움이 된 재판들을 정리해 보고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댓글 사건, 전교조 법외노조 소송, 통합진보당 사건이 대표적. 특정 재판부에 사건을 맡기거나 재판 대응 방식을 분석했다고. 한일관계에 악영향을 줄까 봐 강제징용, 위안부 판결을 차일피일 미루기도 했다. 이쯤 되면 누구를 위한 사법부인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사법부의 행정을 담당하는 법원행정처. 사법농단을 주도했으며 판사 블랙리스트를 만든 곳이다. 대법원의 말을 따르지 않는 판사들의 성향을 분석하고 인사에 불이익을 줬다는데... 여기에 그쳤다고 생각하면 오산. 3억5천만원대 비자금을 만들어 운영하고, 검찰과 헌법재판소의 기밀을 빼내기도 했다. 판사 비리 수사를 막기 위해 검찰총장을 협박할 계획도 세웠다고. 법원은 대체 왜 조폭이 되었을까?
상고 법원이 뭐길래?
사법부의 숙원 사업이다. 현재의 3심제에서 대법원의 업무는 어마어마하게 많다. 대법관 1명이 1년에 3천 건의 사건을 맡는다고. 양승태 대법원은 단순 사건을 맡는 상고 법원을 만들어 대법원의 부담을 덜고 싶어 했다. 2014년 상고 법원 설치 법안이 국회에 발의되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상 4심제다, 중요한 사건을 전담할 대법원 위상만 커진다는 비판에 부딪쳤다.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정치권의 지원이 필요했던 양승태 대법원은 선을 넘었다. 목표가 모든 수단을 정당화하지는 않을 텐데...
실패한 꼬리 자르기?
법원은 조사 과정에서 남은 신뢰마저 잃었다. 주요 PC를 디가우징해 증거를 없애고, 양승태 등 관련자들의 구속 영장을 잇달아 기각했기 때문. 그래서 사법농단에 연루된 법관들을 탄핵하고 특별재판부를 구성하자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양승태의 오른팔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장을 구속하면서 수사는 빨라졌다. 신임 김명수 대법원장은 사법농단의 원흉, 법원행정처를 폐지한다는데...
재판 거래의 끝을 다시 써보려 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만 판결로 거래한 건 아니다. 법원이 정치권의 눈치를 보듯, 정치인들도 법원에 부탁하기 때문이라고. 국회의원들이 파견 나온 판사들을 불러 재판을 청탁한다는 사실은 비밀 아닌 비밀. 여당, 야당 의원 각각 2명씩 적발됐다. 법원을 감시해야 할 법제사법위원회가 중간에서 다리를 놓았다는데... 결국 사법부의 독립은 항상 침해되어 온 건 아닐까?
썰리 :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진로 탐색 시간. 판결로 딜을 하는 그는 법조인이 아니라 비즈니스 맨이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 어쨌든 조사는 시작됐다. 그에게 지워진 40개 혐의만큼 그의 양심도 무겁게 반응했다면 어땠을지. 재판이 끝나고, 개혁을 하면 법원은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을 수 있을까?